장흥 묵촌리 동백림 붉은 낙화 속에 흐르는 고요한 봄의 숲
봄기운이 막 퍼지기 시작한 3월 초순, 장흥 용산면 묵촌리의 동백림을 찾았습니다. 마을 끝자락, 완만한 언덕을 오르자 붉은 동백꽃이 바닥에 수놓인 듯 흩어져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에서 붉은 꽃잎이 천천히 떨어졌고, 그 부드러운 낙화 소리가 숲 안을 채웠습니다. ‘장흥 묵촌리의 동백림’은 수백 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가꿔온 숲으로, 지금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세월이 묻어 있었고, 짙은 초록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고요하게 흔들렸습니다. 사람의 손길보다 자연의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공간이었고, 그 고요함 속에 묵촌리 마을의 역사와 정성이 함께 녹아 있었습니다.
1. 마을과 숲을 잇는 길
묵촌리 동백림은 장흥읍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이며, 내비게이션을 ‘묵촌리 동백림’으로 설정하면 용산면 중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도착할 수 있습니다. 도로 양옆으로는 대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한결 차분해집니다. 입구에는 ‘장흥 묵촌리 동백림’이라 새겨진 작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며, 그 옆에는 마을회관이 있어 주차가 가능합니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흙길이지만 완만하여 산책하기 좋았습니다. 길가에는 동백잎이 바닥을 덮고 있었고,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하게 퍼졌습니다. 산책을 시작하자마자 붉은 꽃잎이 발끝에 닿아, 마치 꽃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2. 숲의 구조와 분위기
묵촌리 동백림은 면적이 넓지 않지만 숲의 밀도가 높아 깊은 인상을 줍니다. 평균 수령 150년 이상의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으며, 나무 높이는 5m에서 10m 정도입니다. 가지는 낮게 뻗어 자연스러운 터널을 만들고, 그 아래로 빛이 점점이 스며듭니다. 바닥에는 낙화한 꽃잎이 붉게 깔려 있어 마치 붉은 융단 위를 걷는 듯했습니다. 동백나무의 잎은 윤기가 나고 두꺼워 바람이 스칠 때마다 은은한 마찰음을 냅니다. 중간 지점에는 작은 쉼터와 안내판이 있어 숲의 유래와 관리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새들이 날아들며 짧은 울음을 남기고 사라졌고, 그 소리조차 이 숲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3. 묵촌리 동백림의 역사와 의미
묵촌리 동백림은 조선 후기 마을의 풍수적 안정을 위해 조성된 숲으로 전해집니다. 바닷바람을 막고 마을의 기운을 보호하기 위해 주민들이 한 그루씩 심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숲은 점차 넓어졌고, 마을의 상징이자 신성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부 나무에는 제를 지내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지금도 매년 초봄이면 마을 주민들이 동백제(冬柏祭)를 열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안내문에는 동백림이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와 신앙, 그리고 자연보호의 정신이 담긴 숲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눈앞의 풍경은 단순히 아름답기보다, 세대를 이어온 ‘기억의 숲’이라는 사실이 더욱 깊이 와닿았습니다.
4. 관리와 공간의 인상
동백림은 마을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으로 잘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숲 입구의 안내판에는 출입 시 유의사항과 탐방로 지도가 정리되어 있었고, 낙엽이 쌓이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청소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인위적인 시설이 거의 없어 자연 그대로의 형태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흙길은 발걸음이 편할 정도로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나무마다 고유의 위치를 지켜오며, 바람에 따라 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숲 전체에 퍼졌습니다. 비가 내린 뒤에도 물이 고이지 않고 흙길 사이로 스며들며 숲의 숨결을 유지했습니다. 햇살이 잎 사이로 떨어질 때마다 반짝이는 그림자가 움직였고, 그 장면이 마치 살아 있는 회화처럼 느껴졌습니다.
5. 주변 명소와 여정의 확장
묵촌리 동백림을 둘러본 뒤에는 근처의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를 방문하면 좋습니다. 차로 15분 거리로, 편백향이 가득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습니다. 또한 ‘회진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점심을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회진항 인근의 ‘바다정식집’에서는 장흥의 특산물인 전어회와 꼬막정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봄철에는 동백꽃이 절정이라 붉은 숲의 장관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잎이 짙어져 시원한 그늘을 제공합니다. 가을에는 낙엽 대신 붉은 열매가 달리고, 겨울에는 푸른 잎이 남아 마을을 지켜줍니다. 동백림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여정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자연과 사람의 시간이 나란히 흐르는 길이었습니다.
6. 방문 시 유의사항과 팁
묵촌리 동백림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다만 마을 중심부를 통과해야 하므로 차량 속도를 줄이고 조용히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숲 안에서는 흡연과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으며, 나무 가지를 꺾거나 꽃을 채집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비가 온 뒤에는 흙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운동화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른 오전이나 오후 늦은 시간에는 햇살이 부드러워 사진을 남기기에 적합합니다. 동백이 가장 활짝 피는 시기는 2월 말에서 3월 중순으로, 이 시기에는 숲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듭니다. 조용히 걸으며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 자체로 완전한 명상이 됩니다.
마무리
장흥 용산면 묵촌리의 동백림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세월이 만든 평화의 숲이었습니다. 수백 년을 버틴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늘 아래에 서 있으면, 자연의 숨결과 사람의 시간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정제된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붉은 꽃잎이 천천히 떨어질 때마다 숲은 살아 있는 듯 움직였고,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봄비가 갠 다음날, 흙냄새가 진하게 퍼질 때 동백꽃이 흩날리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묵촌리의 동백림은 생명과 기억이 공존하는 숲으로, 장흥이 간직한 가장 아름다운 국가유산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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